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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에 관한 프로프 -시조일반론/윤금초

시조에 관한 프로포* / 윤금초

아직도 시조에 관한 한 명쾌한 학설이 서 있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적 있는 교육이니, 주체성 확립이니 하는 이 마당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학인 시조에 관한 뚜렷한 이론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서글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시조의 명칭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핑퐁?을 치듯 왔다 갔다 하는 논쟁만 거듭했을 뿐 이렇다 할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이다. 시조의 기원이나, 발생 연원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선생은 ‘시조 기원에 관한 일고찰(1933)’에서 시조는 무당의 노랫가락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고,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정병욱(鄭炳昱) 선생은 ‘한국고시가론(1977)’에서 별곡체라고 하는 고려 가요가 붕괴되면서 ‘만전춘 별사’와 같은 형식이 나타나서 나중에 시조로 바뀌었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

시조의 율격(律格)에 대한 대목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른바 평시조의 율격이 초장 3·4·4(3)·4, 중장 3·4·4(3)·4, 종장 3·5·4·3이라는 음수율(音數律)에 의한 정형 규정은 맹랑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 박사가 평시조 2천7백59수를 표본조사한 "시조 자수고"에 따르면 초장이 위와 일치하는 작품은 47%(1천2백98수), 중장이 정형에 맞는 작품은 40.6%(1천1백21수), 종장의 율격이 맞아떨어진 것은 21.1%(7백89수)로 나타났다. 이것을 다시 확률론의 공식에 따라 계산하면 초장·중장·종장이 모두 시조의 정형과 일치하는 작품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원섭(徐元燮) 선생이 ≪평시조의 형식연구≫(1977)에서 재확인했고, 서울대 조동일(趙東一) 교수도 그의 책 ≪한국시가의 전통과 율격≫(1982)에서 고시조를 분석한 결과 초장·중장·종장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 고작 4%에 지나지 않는 데도 어떻게 이것을 시조의 정형이라고 고집할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따라서 “전체의 4%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정형으로 삼는다면 시조는 실상과는 사뭇 다르게 이해되고, 시조 창작의 방향도 왜곡된다.”고 말하고 “잘못된 지침은 창작을 부당하게 구속하게 만든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조동일 교수는 음수율을 따진 정형 규정은 일본 시가(詩歌) 율격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이루어졌으며, 조윤제 박사의 연구 방법론은 식민지적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고 못박고 있다.


조윤제 박사가 활동했던 그 시절은 그만큼 불행한 시대였다. 그러므로 우리 문학의 연구 방법론에서 식민지적 사고방식을 빨리 청산할 것을 우선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조의 정형을 음수율이나 음보율(音步律)로 헤아려야 했던 이유는 우선 시조 창작을 위한 기본 개념과 지침을 제공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밝히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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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한다.

동짓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구비구비 펴리라.
(밑줄 친 부분)

이 작품에서 시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장의 둘째 음보가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이라고 표현한 대목은 3·5의 율격―즉 석 자·다섯 자가 아니라 석 자·여덟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이호우(李鎬雨ㆍ爾豪愚) 선생의 ‘개화’를 예로 들어보자.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빛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

이 작품 역시 우리가 시조의 생명이라고 배워 온 종장, 즉 3·5·4·3의 틀에서 훨씬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시조의 기원·명칭·형식론을 되짚어 볼 때 우리는 지금까지 몇몇 학자의 이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해 왔음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상옥(金相沃) 선생의 작품 ‘느티나무의 말’을 예로 들어보자.

바람 잔 푸른 이내 속을 느닷없이 나울치는 해일이라 불러다오

저 멀리 뭉게구름 머흐는 날, 한 자락 드높은 차일이라 불러다오

천년도 눈 깜짝할 사이, 우람히 나부끼는 구레나룻이라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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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의 말’ 역시 시조의 정형 규칙에 의한 자수개념으로 따지면 그 정격(定格)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즉 초장의 경우 ?해일이라 불러다오?, 중장에서 ?차일이라 불러다오?, 그리고 종장의 경우 ?구레나룻이라 불러다오? 같은 대목이 시조 형태의 자수개념을 뛰어넘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상옥 선생의 "느티나무의 말"을 시조가 아니라고 우기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는 앞에 든 책에서 좁은 의미의 시조와 넓은 의미의 시조론을 개진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를 텍스트로 제시, 좁은 의미의 시조와 넓은 의미의 시조론을 펴고 있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40수 가운데 좁은 의미의 시조란 마지막 한 수, 즉 춘·하·추·동 사계절로 구성된 40수 가운데 동(冬)에 해당되는 40째 수뿐이고, 나머지 39수 모두가 넓은 의미의 시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부사시사’ 40수 가운데 단 한 수 외에는 39수 모두가 시조의 율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가 감히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시조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를 개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에서 예로 든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 긴 밤’이나 이호우의 ‘개화’, 그리고 김상옥의 ‘느티나무의 말’을 시조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고시조에 나타난 Y담 한 마디를 소개하겠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지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이름 없는 강계의 기생 진옥(眞玉)과 주고 받은 진한 외설시조는 현대인을 뺨칠 정도로 그 격조가 높은 것이다.

정철이 강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였다(선조 때). 달은 밝고 오동잎 지는 소리 스산한 밤, 귀뚜라미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그를 더욱 쓸쓸하게 하였다. 적막한 처소에 혼자 취해 누워 있는 그에게 나지막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강은 누운 채로 누구인가 물었다. 대답 대신 문이 스르르 열리고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는데 여인은 마치 한 마리 하얀 학처럼 고왔다. 그가 바로 기생 진옥이었다.

두 사람이 술상을 마주 하고 앉은 어느 날 밤, 반쯤 취한 송강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진옥을 불렀다.
“진옥아, 내가 시조 한 수를 읊을 테니 그대는 이 노래에 화답을 하거라.”
“예, 부르시옵소서.”
기생 진옥은 가야금을 뜯고 송강 정철은 목청을 한껏 가다듬어 노래했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뚜러볼가 하노라

이 시조를 현대말로 풀이하면 대충 이렇다.
“옥이라 옥이라 하기에 번옥(가짜 옥―돌가루를 구워 만든 옥)으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자세히 보니 참옥(眞玉)임이 분명하구나.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여기서 살송곳이란 남성의 심볼을 의미)


송강 정철의 시조 창이 끝나자 지체 없이 진옥이 받았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憾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뇌겨볼가 하노라

“쇠라 쇠라 하기에 순수하지 못한 섭철(잡다한 쇳가루가 섞인 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자세히 보니 정철(正鐵→鄭澈)임에 틀림 없구나.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그 쇠를 녹여볼까 하노라.”(골풀무란 쇠를 달구는 대장간의 풀무로서 여기서는 여자의 심볼을 의미)


그날 밤 송강과 진옥은 이 시조를 촉매제로 하여 적소(謫所)를 밝히는 촛불보다 더 뜨겁고 아름다운 사랑의 밤을 보냈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남자의 상징을 ?살송곳?으로 비유한 송강의 기지나, 여자의 상징을 남자의 그것을 녹여내는 ?골풀무?로 비유한 기생 진옥의 메타포 수법은 참으로 탁월한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Y담, 즉 음담패설보다는 한 수 높은 격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과거판 ?르윈스키 스캔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사건이 이미 조선 선조 때에 우리 나라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세계 최강자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르윈스키 양이 백악관의 은밀한 곳에서 ?오럴 섹스?니, ?시거 섹스? 잔치를 벌였다고 하여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르윈스키 양이 자신의 옷깃에 묻은 정액을 증거물로 제시해 가며 눈물로 증언했지만 결국 그는 클린턴의 옷을 벗기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선조 때의 명기 홍랑(洪娘)은 시조 한 수로 최경창(崔慶昌)이라고 하는 걸출했던 한 인물을 함락시키고 만다.

묏버들 가리어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는 창밖에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당시 삼당시인(三唐詩人)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고죽(孤竹) 최경창이 북평사(北評事:武官 벼슬의 하나)로 경성(鏡城)에 근무하고 있을 때 일이었다. 기생 홍랑이 읊은 한 수의 시조, 마흔 다섯 자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사랑의 시조 한 수에 그만 사나이 애간장이 다 녹은 최경창은 시조를 지을 줄 아는 멋쟁이 여인 홍랑 앞에 엎어지고 말았다. 선조 6년 최경창이 경성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에서 만난 홍랑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듬해 임기를 마친 그가 서울로 돌아오게 되자, 영흥(永興)까지 배웅한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러 저문 날 내리는 빗속에서 이 시조와 버들가지를 함께 건네 주었던 것이다.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여기에 감복한 고죽 최경창은 돈도 벼슬도 영화도 다 싫다며 관직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기생 홍랑의 품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오늘날의 ?르윈스키 스캔들?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시조를 생활의 일부로 체득하고 살았다. 글줄이나 읽은 사대부(엘리트)는 물론이요, 창이나 방패를 들었던 무사, 그리고 기녀(妓女)에 지나지 않았던 진옥이나 황진이, 홍랑 등 수많은 여인들이 주옥같은 시조작품을 남겨 우리 문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일부 엘리트일수록 시조 한 수 외우지 못하고, 외국 것이라면 꺼벅 죽는 문화 사대주의병(事大主義病)에 걸린 환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문화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민족시인 시조문학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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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다시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사회현상이 ?막혀 있음?은 보수적·폐쇄적임을 의미하고 과거 지향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것이 ?열려 있음?은 개방적·발전적 성격을 지님은 물론 미래 지향성을 내포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음수율ㆍ음보율에 얽매인 평시조를 ?막힌 시조? 혹은 ?닫힌 시조?라고 규정한다면, 반대로 폭넓은 융통성을 가진 사설시조, 엇시조, ?옴니버스시조? 같은 형태를 ?열린 시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시조가 외형율(外形律)의 제약을 받는 닫혀 있는 문학양식이 아닌, 내재율(內在律)을 중시하는 열린 마당, 열린 문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사설시조의 경우 우리 문학의 발전적 변모 과정을 더듬어 볼 때 열린 형식의 준거(準據)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강대 박철희(朴喆熙) 교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변화·발전 과정을 밝히는 글에서 ?조선조 사설시조의 경우 그것은 선행하는 사대부 시조의 관념성과 대립되는 사실적 요소에 의한 현실적인 시?라고 전제하고, ?그것은 다음에 올 자유시의 기초를 닦게 해준 에포크(新紀元)임에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사설시조에 있어서 사설조의 산문성이 당시 조선조 가사를 지배하던 산문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산문성이 다름 아닌 그 후 자유시의 개성적 리듬의 미학적 기반?이었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 말을 요약하면 사설시조가 발전하여 현대 자유시의 모태를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은 시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철희 교수가 진단한 한국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일관하는 지속성과 변화·발전의 흐름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면 우리는 ?사설시조→산문정신→현실인식→역사의식→현대 산문시?라는 등식을 쉽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설시조는 개성적인 리듬을 지녀왔으면서도 자유시에 영향을 끼친 개혁의지가 담긴 시요, ?열려 있음의 시?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단조로운 형식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걷어내는 ?의식의 혁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섬겨왔던 평시조 유일사상의 울타리를 허물고 시조의 다양한 형태―즉 양장시조·엇시조·사설시조 등 시조의 모든 형태를 즐겁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가 주장하고 이미 실험해 보인 ?옴니버스시조?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작품 속에 평시조·엇시조·양장시조(2장시조)·사설시조 등 모든 시조 형식을 다 아우르는 ?옴니버스시조(혼합 연형시조)?를 적극 수용하는 것도 시조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를 전후로 한 일간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를 훑어보면 거의가 시사성이나 역사의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선영(宋船影)의 ‘설야’ ‘휴전선’을 비롯해서 이근배(李根培)의 ‘묘비명’ ‘벽’ ‘산하일기’ ‘노래여 노래여’, 이상범(李相範)의 ‘일식권’, 박재두(朴績)의 ‘목련’, 정재호(鄭在虎)의 ‘제3악장’, 정하경(鄭夏庚)의 ‘불모의 거리에서’ 등등 현실인식이나 상황의식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을 열거하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시조에 있어서도 형편은 같다. 그 작품의 창작 배경을 들추어보면 그것들이 당대의 시대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 ?시로 쓴 사회사?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최근의 시조문학 경향은 어떠한가. 지나칠 정도로 서정성에 치우친 나머지 리얼리티를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문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구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는 아예 담을 쌓고 마치 골방에 숨어서 자위(自慰)나 하듯 오늘의 시조가 ?마스터베이션 문학?으로 타락해 가고 있다는 현상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시(漢詩)의 직역 같은 서정시, 과거 지향의 복고주의가 팽만해 있는 ‘멍텅구리 시조’가 활개치는 세상인 것이다.

개성과 독창성, 혹은 다양성을 짓누르는 획일주의는 경직성을 의미하고, 답보상태를 의미한다. 고여 있음은 썩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발전적 변모를 모색하는 실험정신이나 개혁의지가 모자라는 오늘의 시조는 플라토 현상(정체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학이 결코 인간의 삶과 그가 숨쉬고 있는 사회와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시조도 서정성과 사회성을 잘 조화시켜, 양자가 행복한 악수를 할 때 비로소 보편적 공감대를 얻게 되고, 새로운 활로가 트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시조문학은 황무지이다. 개척해야 할 땅이 넓고 광활한 것이다. 개척해야 할 소지가 무궁무진한 이 처녀림에 힘찬 삽질을 하고 씨앗을 뿌렸을 때 튼실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여기서 시조의 명칭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시조의 명칭은 영조 때의 사람 신광수(申光洙)가 쓴 《석북집》에 나타난 기록을 토대로 하여 ?시절단가(時節短歌)?, 혹은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시조는 엄격한 의미에서 문학장르의 일종이기보다는 음악의 창사(唱詞ㆍ노랫말)에 가깝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향가(鄕歌)나 가사문학과는 달리 시조는 우리 말의 기본 마디인 3·4조나 3·5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호흡에 가장 걸맞고,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리듬을 지닌 정형시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숨쉬고 살고 있는 생활의 걸음걸이가 3음절 내지 4음절의 정서에서 우러나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춤사위나 전래 민요, 판소리 가락, 노동요 등도 이러한 율조(律調)를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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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조라는 명칭을 표기함에 있어서 왜 하필 ?시조?라는 ?시?자에 글 ?詩?자가 아닌 때 ?時?자를 썼느냐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조는 당대의 정서, 당대의 시대상황을 담는 문학양식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황진이가 노래한 &@lt;동짓달 기나 긴 밤>은 황진이가 처했던 개인적 삶의 실상과 시대상황을, 송강 정철이나 박인로(朴仁老)는 그가 숨쉬고 살았던 시대상황과 현실인식을 한 편의 시조 행간 속에 풀어낸 것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하면 6·25 동란으로 인한 분단의 비극을 떠올릴 수 있고, 〈굳세어라 금순아〉 하면 1·4 후퇴 때 헤어진 이산가족의 슬픔을 연상하게 하는 유행가 가사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우리 고시조를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반드시 당대의 정서가 녹아 있게 마련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시조가 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lt;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고 읊은 이 작품을 통해 임진왜란의 격전지에서 군사를 지휘했던 충무공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시조의 명칭에 글 ?詩?자가 아닌 때 ?時?자를 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현대시조는 가장 현대적인 오늘의 정서를 아우르는 문학양식요, 민족시로서의 그 존재 가치가 확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조는 곧 시(詩)이다. 형식만 정형을 따를 뿐이지 거기에 담는 내용은 오늘의 정서, 오늘의 삶의 이야기를 아우르는 현대시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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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불완전 정형시이다. 정형시이지만 완전한 정형시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시조 형식의 특징을 밝히려는 노력을 경주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학자도 아직 완전한 정설을 내리는 데는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시조의 특징을 정형시이면서 비정형시라고 규정한다.

시조는 불완전한 정형시이지만 그 율격의 특징을 구별하는 학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운율의 기본 단위를 글자(字數), 음보(音步), 구(句) 중 어느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구수율(句數律), 자수율(字數律), 음보율(音步律)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 세 학설 모두 시조를 3장의 형식으로 보는 데는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한 장(章)을 이루는 율격의 단위 개념은 서로 다른 것이다. 한 장을 두 개의 구로 보는 구수율과 한 장을 15자 내외로 보는 자수율, 그리고 4음보로 보는 음보율로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합하면, 시조의 기본 형식은 3장 6구 또는 12음보 45자 내외인 것이다. 이때 한 구나 음보의 범위를 몇 글자로 보는가 하는, 학자의 시각 차이에서 오는 미세한 문제가 따르게 된다. 글자수(음절수)를 절대적 조건으로 본다면 시조의 형식은 자수율로 귀결되고, 그렇지 않으면 구수율이나 음보율로 귀결되는 것이다.


현재 학계에선 음보율이 우세하고, 시조시인들의 창작 현장에선 자수율이 우세한 것이다. 앞에서 조동일 교수의 이론을 빌어 언급했듯이 시조는 융통성이 많은 자유로운 시인 것이다. 음수율이나 음보율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그 율격을 잴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공동체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신명처럼 독특한 내재율이 살아 있는 형식 체험의 시인 것이다.

그러나 일부 그릇된 인식과 지도자의 잘못으로 협의의 시조, 또는 ?막힌 시조?인 평시조만이 강요되어 온 우리 문학풍토도 이제 반성의 계기가 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문학풍토는 아직도 서구적 발상법이나 표현방법론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그러하지만, 특히 시나, 시조문학의 경우 이제 외국 것에 대한 추종에서 자립으로, 이론의 수입에서 생산으로, 그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숨결, 우리의 정신이 담겨 있는 시조문학이 재조명되어야 마땅하고, 시조 창작 운동이 널리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화=서구화?라는 글러먹은 조류에 휘말려 상실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회복하는 일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 확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920년대나 30년대에 발표된 자유시를 분석해 보면 시조의 율격이 녹아 있는 시작품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작품 중에 드물게는 시조 율격(3장 4음보율)과 종장의 자수율까지 온전히 지키고 있어, 이 작품이 과연 시인지 시조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것도 있다. 또 자수율은 엄격히 지켜지지 않았지만 시조 율격은 지킨 시조형의 자유시도 있다. 그밖에 시조 형식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일치되는 시조변형 자유시도 있다. 즉 시조 율격에 한 구나 한 장을 추가한 자유시인 것이다. 또 4음보율을 엄격히 지키거나, 시조 율격은 불완전하지만 3장을 엄격히 지킨 시조 지향 자유시도 많은 것이다.

이렇게 시조와 유사한 자유시가 많다는 것은 자유시가 시조의 영향을 많이 받고 발전했으며, 양자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서구시의 영향을 받은 자유시도 많지만, 반면 시조의 영향을 받은 자유시도 많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조가 자유시에 끼친 영향은 무시되고, 서구시(번역시)의 영향만 중요시한 것이 현대문학 연구의 풍토였다. 즉 자유시는 서구시의 영향권에서 발전했으며, 시조와 대립적 성격을 지닌 것처럼 잘못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설주(李雪舟) 선생의 시 ‘저녁’을 보자.

기다리는 / 세월을
학같이 / 목에 감고

마음의 / 수의(囚衣)를 빨아
촉도(蜀道)에 / 말리우니

바람 찬 / 늦인 하늘에
구름이 / 울고 간다

이 시는 시조의 형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한 행은 시조의 한 구에, 또 한 연은 시조의 한 장과 각각 일치한다. 즉 3연 6행의 형식은 3장 6구의 평시조 형과 다름없다. 이 시는 3장 4음보율을 지켰으며, 종장의 첫째 음보와 둘째 음보에 3·5의 자수율도 정확하게 지켰고, 전체 자수도 44자로 시조의 기본 자수와 일치한다. 이 시는 시조의 구수율, 자수율, 음보율을 온전히 지니고 있으므로 틀림없는 시조인 것이다. 비록 시(자유시)로 발표되었지만 사실은 시조인 것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우리는 시와 시조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발견하게 된다.

해와 / 하늘빛이 /
문둥이는 / 서러워 //

보리밭에 / 달 뜨면 /
애기 하나 / 먹고 //

꽃처럼 / 붉은 울음을 /
밤새 / 울었다. //


이 시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선생의 ‘문둥이’ 전문이다. 창원대 민병기 교수가 〈시와 시조의 관계〉라는 글에서 지적했듯이 이 시는 외형상 자유시 같고, 또 그렇게 분류되고 있지만 사실은 시조의 율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음보(/)와 음보행(//)을 위와 같이 구분해 보면 이 작품이 시조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 문학사에서 ‘문둥이’는 자유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조에 가까운 것이다. 고시조의 형식을 적용하여 자수를 따지면 5자 정도 부족하지만, ?광의(廣義)의 시조? 즉 이 작품이 지닌 내재율을 감안하면 분명 시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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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선생의 ‘문둥이’를 자유시로 읽으면 현대적 의미가 살아나고, 반대로 시조로 읽으면 고전미가 우러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시로 읽건, 시조로 읽건 그 의미와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와 정서적 충격이지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자유시인가, 시조인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단지 우리는 여기서 이 작품이 시조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왜 자유시로 취급하였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이에 대해 창원대 민병기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서정주 선생의 첫 시집 《화사집》에 수록된 24편의 시 가운데 시조의 기본 율조인 4음보율이 흐르는 작품은 58.3%,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 수록된 24편 가운데 4음보율이 지켜진 시편은 67%, 세번째 시집 《서정주 시선》에 수록된 20편의 작품 중 4음보율을 지닌 시편은 7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박목월(朴木月) 선생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초기에 완전히 시조의 율격을 풀어내 자유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윤사월’일 것이다.

송화가루 / 날리는 /
외딴 / 봉우리//

윤사월 / 해 길다 /
꾀꼬리 / 울면 //

산지기 / 외딴 집 /
눈 먼 처녀사 /
문설주에 / 엿듣네//


박목월 선생의 ‘윤사월’을 음보율로 나누면 종장이 길어진 평시조인 것이다. 종장 둘째 음보의 음수가 5~9자까지 허용되는 것이 고시조 형식이므로, 이 작품은 평시조 율격을 그대로 지킨 예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박목월 선생의 시집 《풀잎단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4음보율이 흐르는 시편이 89%에 이르고, 같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선생의 경우《조지훈 전집》는 217편의 시 가운데 70%에 이르는 작품이 4음보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김소월(58%), 정지용(62%)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우리 시문학사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시인들의 작품 속에 민족의 가락인 시조의 내재율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한국 문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무수한 시인들이 우리 민족의 숨결이요, 기본 가락인 시조문학을 충분히 마스터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학이 더욱 국민 정서에 어필할 수 있었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시조의 발생연원은 서울 정도(定都) 600년보다 200년이나 더 역사가 길다. 그러나 800년 이상 면면히 그 맥을 이어온 시조문학의 기나긴 역사에 비해 아직까지 장편 서사시조 한 편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의 크나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문화민족에겐 그들 나름의 민족시나 정형시가 발전, 정착돼 왔다. 중국에는 오언율시나 칠언절구라고 불리는 한시(漢詩)가 있고, 영국에는 소네트라고 하는 14행시가 존재하고 있다. 일본엔 와카(和歌)나 하이쿠(俳句)라는 전통문학이 있고, 한국에는 시조라는 이름의 정형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겨레시 시조는 갈수록 그 설 자리를 잃고 홀대받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대중이 시조작품을 외운다거나 시조짓기 운동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을 분석해 보면 시조의 비중이 자유시보다 훨씬 미약하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국적 있는 교육이니, 주체성 확립이니 하고 떠드는 정책입안자들이 아직도 문화 사대주의 망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60년대 초반에 검둥이나 양키의 팔짱을 끼고 히히덕거리는 거리의 여자를 보면 ?양갈보?라고 눈을 흘겼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정신적 갈보들이 숱하게 많다. 어줍잖게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일부 몰지각한 정책입안자들이 서구문학만 최고로 치는 정신적 양갈보가 있는가 하면,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불갈보, 일본 유학을 갔다온 왜갈보가 판치고 있다. 앞으로 중국 유학파, 러시아 유학파까지 합세한다면 중갈보, 러갈보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얼마나 짓밟고 유린할지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프랑스 조각가 에밀 부르델은 ?모든 예술은 지식의 열매?라고 규정했다. 마찬가지 논리로 시인과 작가는 자기가 아는 지식 이상의 그 무엇을 그릴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것이다. 글 쓰기 작업, 혹은 시조 짓기 작업은 자신의 예술적 소양과 지식을 총체적으로 집약하여 표현하는 정신노동의 결정체이다. 제주도 귀양살이 때 ‘세한도’를 그렸으며, 추사체(秋史體)로 유명한 금석학자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는 ‘사란결(寫蘭訣)’(난초를 그리는 비결)에서 ?생동하는 난초를 만에 비유하여 9천9백9십9푼은 공력(功力)으로 얻을 수 있으나 나머지 1푼은 노력만으론 지난(至難)하니, 구천구백구십구를 얻고도, 나머지 1푼 때문에, 사이비 난초만 그리다가 입문은커녕 문전에서 서성거리고 만다.?고 했다. 그렇다.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예술가의 행적을 살펴보면 얄팍한 재주보다는 남 모르게 뼈를 깎는 노력,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절차탁마의 노력과 타고난 재분(재주)이 적절하게 결합되었을 때 예술적 성취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조 한 수는 마흔 다섯 자 안팎의 언어로 구성돼 있다. 짧다면 짧고, 작다면 작은 그 그릇 속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방식, 온갖 생활습속까지가 다 담겨 있다. 한 나라의 민족시는 그 민족의 리듬이요, 그 민족의 살아 숨쉬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기에 시조문학은 유구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그 맥락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연대 21세기를 맞이한 오늘, 시조문학이 다시 우리 문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다 같이 분발해야 하고, 시조가 한국 전통문학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길은 오직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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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Propos)’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이야기’ 또는 ‘화제거리’ ‘단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