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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내재율 3장(章) 6구(句) / 정완영

오랜 세월동안 망각의 바다 속에 버려져 있던 보물들의 인양작업이 지금 우리 정부에 의해 서둘러지고 있는 걸로 안다. 가령 각 지방의 민속놀이의 부흥, 또는 무슨 연희자(演戱者)들의 인간문화재 지정, 예컨대 근자에 발굴된 안동지방의 차전(車戰)놀이라든지, 봉산탈춤, 하회(河回)탈춤이라든지 심지어 어느 지방의 모내기 노래까지 모두 자리 있을 때마다 연희되고 있고, 우리 국악, 우리 판소리의 계승문제, 조그만 기물들의 장인(匠人)에 이르기까지 소멸되어가는 민족적인 정신문화의 향수에 대한 배려가 오늘보다 더 고양되어간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하물며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 민족 역사의 애환이 스며있다고 하여 대중가요에까지 훈장이 주어지는 오늘이 아니었던가.
한데 여기 아주 국보급 중에서도 국보급인 유산이 그 바다의 심저에 가라앉아 있는 채 인양자(當路者)의 시선이 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정신의 본향, 우리 정성의 본류인 民族詩歌 [時調]다. 다시 말해 3章 6句에 갈무리되어 있는 민족혼의 내재율 3·4·3·4(초장), 3·4·3·4(중장), 3·5·4·3(종장)의 시조인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오류이며 시행착오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3章 6句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思考), 온갖 행위, 온갖 습속까지가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좀 비약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필자의 나라사랑의 안목으로 바라볼라치면 춘하추동 계절의 행이, 할머님의 물렛잣던 손길, 늙은 농부의 도리깨타작, 우리 어머님들의 다듬이 소리, 거 어깨춤도 절로 흥겹던 농악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새겨 보고 새겨 들으면 3章 6句 아닌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이며 심지어 구부러진 고향길, 동구밖의 느티나무, 유연히 앉아있는 한국 산의 능선들, 부연끝 풍경소리, 아차(亞字)창의 창살, 어느 것 하나 3章 6句의 시조가락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는 우리 시조는 그 가형(歌形)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대맥(大脈)이 절로 흘러들어 필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하기 때문에 필자는 어떠어떠한 민속놀이, 어떠어떠한 고기물(古器物)에 앞서 진실로 민족정신의 보기(寶器)인 우리 시조를 먼저 인양해야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 문단의 인구가 지금 1천 6백(이 책 발행시)을 헤아린다고 한다. 다른 이는 그만두고라도 글을 쓴다는 우리 문인들 중에서 시조의 틀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문인뿐 아니라 전체 국민이 자기 나라 국시(國詩)인 단가(短歌) 배구(俳句)를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네들은 촌부(村夫)이건, 공인(工人)이건, 회사원이건, 공무원이건 할 것없이 이 국민시가로 하여 국민 정서의 순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국내에 작가(作歌)정신이 미만해 있는 것이다. 요즘 또 듣기로는 자기네 국시를 서구에까지 내보내어 그곳에서까지 [短歌會]니, [俳句會]니가 성행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시조를 배운다는 학생들도, 이를 가르친다는 선생들도 건성으로 넘기고 있다.
그나 그뿐인가, 문인들 중에서는 간혹 시조무용론까지를 들고나오는 몰지각한 사람이 있으니, 심히 민망하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시 중에서도 시문학사에 남을 만한 작품은 거의가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사실을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맥박 속에는 본질적으로 시조적인 내재율이 흐르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재도 보호해야 한다. 연희도 계승받아야 하고 공장(工匠)도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 시급한 일은 온 국민이 우리 국민문학·민족시를 모두 배우고 익혀 우리 정신의 대종(大宗)을 이어받고, 본류를 밝히어 정서를 순화하고, 인격을 도야하여 흐려지고 거칠어지려는 풍조를 시조짓기운동으로 하여 바로 잡아야 하리라 믿는다. 사실 우리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도 {한산섬 무루} 시 한 수로 하여 구국 충정이 더욱 빛났고, 절세가인 황진이도 {동짓달 기나긴 밤} 한 수로 하여 오늘날까지 그 향기가 전해 내려오지 않았던가. 물량에만 쏠리려는 우리들의 메마른 심전(心田)에다 물을 대주고 윤기를 돌리는 전국민 시조짓기운동은 이제 봉화를 올렸다.



[ 생활과 운(韻) ]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박재삼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4가지 일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절차이다. 그 4가지 절차 중에서 혼례(婚禮)·상례(喪禮)·제례(祭禮)는 지금도 형식상 살아았지만 관례(冠禮)만은 이미 희미한 기억 속에 매몰되어가고 없다. 하지만 예(禮)라는 것이 사라지기야 이미 오래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제례이야기다.
<제삿날 큰집에 모여드는 등불 이야기>이다. 연전 어느 사회단체에서 예술인의 성장과정을 조사한 통계보고서에 의하면 제삿날 종가(宗家)집에서 지내는 제례는 감수성이 강한 어린 소년 소녀의 가슴 속에 일생동안 지워지지 않는 조그만 감동을 심어주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어린 시절 할아버님 아버님의 손길에 이끌려 마치 석류꽃 같은 초롱불을 밝혀들고 큰댁으로 참배차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속에 조그만 희열의 잔물결이 파문짓곤 하는 것이다. 1년이면 열번도 넘어드는 대소 제례는 철따라 꽃 피고 잎 지는 시절의 사이사이 우리들 한국에 생을 받은 소년들의 향수에 사무치는 축제요. 카니발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생활, 우리 정신의 가장 깊은 골을 밝혀주던 하나의 심등(心燈)이요, 하나의 운사(韻事:운치 있는 일)인 것이다. 시조 이야기를 하면서 제례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그 제례의 운치가 바로 시조의 운치와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조는 바로 제례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운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주변에서의 그 운사들은 등불마저 희미하게 빛바래져가고 말았다. 제례뿐만 아니라 운사란 운사는 하루가 다르게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행사는 있어도 운사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생활, 우리 주변에서 운치를 되찾고 그것을 느끼는 일, 그것이 우리 고유의 정서를 되찾는 것이며 시조 캠페인의 기본이요 근간이 되어야한다.
아직 안동(安東) 차전(車戰)놀이도 있고, 봉산탈춤도 있고, 하회탈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무슨 행사 날에나 선보이는, 그야말로 하나의 행사이지, 서민대중 속에 뿌리박은 민족 애환의 운사는 못되는 것이다.
차라리 대보름날 부럼을 깨물고 달불을 놓던 일, 3월 삼짇날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던 일, 5월 단오절 그네를 뛰고 궁궁이물에 머리를 감던 일, 6월 유두날 동류를 찾아 머리를 헹구던 일, 7월 백중날 물꼬를 찾아가서 겨릅에 꽂아둔 인절미를 뽑아먹던 일…같은 것들이 우리 정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며 그 운치가 시조의 훌륭한 소재가 되는 것이다.
생활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면 문화는 사멸하고, 정치는 경직하고, 역사는 정체되는 법이다. 진실로 작은 듯하면서도 아주 막중한 일이 생활 속에 운을 불어 넣는 일이다. 시조를 국민문학·민족문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것이 선행돼야 한다.
필자는 가끔 이런 일을 생각해 보며 아리송해질 때가 있다. 가령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란 현실과, 우리 선인들이 살고 간 그 시대의 사화상과를 비교해 볼 때, 과연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이란 세월이 반드시 더 행복하다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지(人智)나 문명이 좀 덜 깨인 채라도 훈훈한 인정과 정감에 젖으며 살고 간 옛 사람들이 오히려 더 행복을 누리고 갔다 할 것인지?
사람에 따라 그 척도하는 바가 다르기야 하겠지만 필자는 아무래도 물질문명이 갖다준 편리라는 이기를 얻기 위해서 인간 본연의 재화인 덕성마저도 팔아넘기는 오늘보다는 차라리 자연과 인성의 본향에서 조금은 배고프고 조금은 등이 시려도 서로들 애휼(愛恤)하며 살아가던 그날이 훨씬 더 소망스러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 시조만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조짓기운동은 식어가는 민족정서에 군불을 지피고 굳어가는 인간덕성에 모닥불을 놓아 사람마다의 가슴에 나라사랑, 겨레사랑의 더운 숨결을 회복하고 집집마다 마을마다 인정있는 꽃밭을 가꾸자는데 큰 뜻이 있는 것이다.



[ 민족시란 무엇인가 ]


옛부터 민족이 있는 곳에 그 민족 특유의 시가 있어 왔다. 멀리 태서(泰西)의 이야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 한문문화권인 동양 3국을 살펴보면 중국에 5언이니 7언이니 하는 한시가 있고, 일본에 단가(短歌)니 배구(俳句)니 하는 자기네 나름의 고유시가 있는가하면, 우리나라에는 한국 특유의 뛰어난 가형(歌形) 3章 6句의 시조가 있어 왔다. 그런데 이 제각기의 시가(詩歌)들이 하나같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시가 수천년 동안 풍우에 씻기어 단단하게 광택이 나는 큰 산 큰 계곡의 반석 같은 것으로서, 중국인이란 대륙의 끈질기고 요지부동한 민족성과 그 역사의 장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단가(5, 7, 5, 7, 7)니 俳句(5, 7, 5)는 그 자수의 긴축성으로 보나, 그 노래솜씨의 삽상한 맛으로 보나 일호의 군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그네들의 성품이며 식성까지 여실히 나타내는 것으로써, 어떻게 보면 그네들의 너무나도 빽빽한 여유롭지 못함까지가 엿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우리 시조는 떠 어떤 노래인가? 우리 민족시인 시조는 초·중·종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초장이 3, 4, 3, 4, 중장도 3, 4, 3, 4, 인데 종장만이 유독 3, 5, 4, 3으로 자수의 변용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시의 5언이나 7언, 일본의 단가·배구가 모두 자수의 배열에 있어서 한 자의 가감이나 어떠한 변용도 용납이 안되는데 반해, 우리 시조는 초장, 중장에 있어서도 자수의 가감(다음에 상술하겠음)이 가능할뿐 아니라, 종장에 와서는 물굽이가 한 바퀴 감았다가 다시 풀어져 흐르는 듯하는 변용(3, 5, 4, 3)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의 시가가 일행직류(一行直流)인데 반해 유독 우리 시조만이 직류에다 일곡을 더 보태어 마치 여름날의 합죽선(合竹扇)처럼 접었다 펴는 시원함을 가져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그 연유한 바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알겠거니와 옛날 밤을 새워가면서 잣던 할머니의 물레질, 한 번 뽑고(초장), 두 번 뽑고(중장), 세 번째는 어깨너머로 휘끈 실을 뽑아 넘겨 두루룩 꼬투마리에 힘껏 감아주던(종장)것, 이것이 바로 다름아닌 초·중·종장의 3장으로 된 우리 시조의 내재율이다.
이만하면 초장·중장이 모두 3, 4, 3, 4인데 왜 하필이면 종장만이 3, 5, 4, 3인가. 그 연유를 알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시조적인 3장의 내재율은 비단 물레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백반에 걸쳐 편재해 있는 것이다.
설, 다음날부터 대보름까지의 마을을 누비던 걸립(乞粒)놀이(농악)의 자진마치에도 숨어 있고, 오뉴월 보리타작마당, 도리깨질에도 숨어 있고, 우리 어머니 우리 누님들의 다듬이 장단에도 숨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든 습속, 모든 행동거지에도, 희비애락에도 단조로움이 아니라 가다가는 어김없이 감아 넘기는 승무의 소매자락 같은 굴곡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우리 국학자들 중에서는 더러 우리 시조의 3장을 견강부회로 한시의 기(起), 승(承), 전(轉), 결(結)에다 억지로 떼어다붙여, 초장이 기(起)요, 중장이 승(承)이요, 종장이 전결(轉結)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의 학자들이 자기 나라 시가를 아직 그 누구도 한시와 결부하여 이야기한 논거를 찾아보지 못했는데, 하필 우리 학자들이 우리 시조를 한시와 관계지으려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이것도 항용 말하는 사대주의사상에서 온 풍조라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또 요즘 시조를 쓰는 시인들 중에는 시조가 이미 창(唱)에서 떠난 지가 오래라고 한다.
그러나 시조창이 시조시 발상의 도출에 원용된다는 것은 하나의 철학(?)인 것이다. 제각기의 민족정서의 필연적인 귀결이라면, 우리 시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판소리, 우리의 시조창도 우리 민족 수천년의 조용하고 은은한 내부의 흐름의 소리겠기에 말이다.
하나에도 둘에도 시조에의 용념(用念)은 3, 5, 4, 3인 종장에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이제 다음부터는 자수고(字數考)로 넘어가기로 한다.



[ 자수고(字數考) ]


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조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서 우리 민족의 모든 내재율이 담겨진 그릇이다. 혹자는 지금같이 문물과 사고가 복잡다단하고 자유분방한 현대에 있어서 정형 속에 인간의 사유를 끌어담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우리가 반만년이란 역사를 살아오면서 깎고, 갈고, 다듬고, 간추려온 틀인 까닭에 사람이 길을 걷다가 마침내는 절로 발걸음이 제 집으로 옮겨지듯이, 우리 모두의 귀결점인 시조로 들어가기란 결코 부자유스럽거나 어렵거나 한 일이 아니다.
그나 그뿐인가. 우리 시조는 한시나 일본의 단가 배구(俳句)처럼 그 자수에 요지변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신축성이 있고 자유자재롭다는 것이다. 다음에 그 예증을 들어보기로 한다.
시조의 기본율은,

3 4 3 4 (초장)
7 7
3 4 3 4 (중장)
7 7
3 5 4 3 (종장)이다.

成佛寺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3 4 3 4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3 4 4 4
저 손아 마자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3 5 4 3

노산 이은상 선생의 <성불사의 밤>이 그 기본율에 맞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기본율에서 벗어나 더 휘청거리는 멋이 있는 작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태양이 그대로라면
8
지구는 어떤 건가
7
수소탄 원자탄은
7
아무리 만드다더라도
9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3 5 4 4

가람 이병기 선생의 <냉이꽃>의 셋째 수다.
이렇게 시조란 틀에 박힌 듯 하면서도 박히질 않고, 또 자유분방하면서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정형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우이든 내재율만 잃지 않는 범위안에서 어느만큼 자수의 가감은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파격(자수가 많으면)을 하면 쥐잡기 위해 독을 깨는 우(遇)을 범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삼가야 할 일이라 믿는다. 마치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준법(遵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가 허락되듯이 말이다.
그러면 시조에 있어서 허락될 수 있는 자수의 테두리는 얼마만큼의 것인가?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부동) 5(7자까지 가능) 4(5자까지 가능) 3(4자까지 가능)

이것을 풀이한다면 초·중·중장의 전후귀가 3, 4자로 합하면 7자인데, 9자까지가 가능하고 (예컨대 3, 4도 좋고 3, 5도 좋고 3, 6도 좋고, 2, 7이나 4, 5도 좋고), 종장 3, 5, 4, 3의 첫 3자는 부동이나 5자는 7자까지, 4자는 5자까자, 3자는 4자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에 작품의 예를 들어 보겠다.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싫단 말 다신 않을래
3 6 3 5
이밤도 또 밤새워 우는 저 가을 벌레들 소리
3 6 3 5
더구나 우수수 잎들이 지면 어이 견딜 까본가.
3 8 4 3

이호우 선생의 <聽秋(청추)>라는 작품의 첫 수다.
얼마나 자수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내재율을 잘 살려 낸 작품인가. 그러면서도 파격이 전혀 없는 천의무봉한 가락인가. 이상 드러난 작품들만 보더라도 우리 시조가 얼마나 리듬미컬하고 멋이 있
으며, 부자유한 듯하나 기실은 자유롭고, 또 분방한 듯하나 아주 잘 정제된 우리 가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단수와 연작 ]


이웃에 봄을 나눈
살구꽃 그늘 아래

도란도란 얘기들은
소꿉질에 잠차졌고

상치 씨
찾는 병아리
돌아올 줄 잊었다.

작고한 시인 이영도 선생의 <봄Ⅱ>이다. 시조는 원래 시절가조(時節歌調)라 하여 계절이건 인심이건 시절을 노래한 시였다. 그리고 시제라는 것을 붙여서 노래했던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연작이니 하여 여러 수를 엮어서 한 편의 작품을 이루었던 것도 아니다. 하기 때문에 시조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이 단수에 있다는 것을 말해둔다. 일본의 단가니 배구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시조의 본을 떠서 시제를 붙이는 일도 없고, 노래 속에 반드시 계절이 나오며, 더더구나 연작이라는 것은 없다.

여긴 내 신앙의 등주리 낙동강 흥건한 유역
노을 타는 갈밭을 철새 떼 하얗게 날고
이 수천(水天) 헹구는 가슴엔 [세례요한]을 듣는다.

석간을 펼쳐 들면 손주놈 [고바우]를 묻는다
혀 끝에 진득이는 이 풍자 감칠맛을
전할길 없는 내 어휘 모국어로 가난타네.

네 살짜리 손주놈은 생선 뼈를 창살이란다
장지엔 여릿한 햇살, 접시엔 앙상한 창살
내 눈은 남해 검붉은 녹물 먼 미나마따에 겹친다.

역시 이영도 선생의 <흐름 속에서>라는 작품이다. 이런 시상을 단수에는 담을 수 없다. 현대인들의 복잡하고 다기한 생활상을 3장 6귀에 다 담을 수 없어 자연발생적으로 이어져 나간 것이 오늘날의 연작시조라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 두어야 할 일은 아무리 연작이라 하더라도 수마다 떼어놓고 보아 한 수 한 수가 다 작품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둘 일은 3장 중 어느 한 장은 꼭 풀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 격조(格調) 또는 경(境) ]


아무리 학문이 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품이 높지 않으면 우선 그 사람은 사람으로서 낙제다. 시조가 아무리 좋은(?) 뜻을 담았다 하더라도 격조가 높지 않으면 낙제다.


난(蘭)있는 방이든가, 마음귀도 밝아온다
얼마를 닦았기에 눈빛마저 심심한고
흰 장지 구만리 바깥 손 내밀 듯 뵈인다.

김상옥 선생의 작품 <난있는 방>이다. 밝고 맑고 청정하기까지한 시다. 3장 단수에 갈무려져 있는 간결한 시상을 마치 한 장 백지장을 떠올리듯 건져내고 있다. "흰장지 구만리 바깥 손 내밀 듯" 내뵈는, 정말 눈빛까지 심심한 작품이다. 이 무욕, 이 허심, 시가 여기에 이르르면 하나의 선(禪)의 경지에 들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시의 품격, 다시 말해서 시조의 격조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작품이다.
다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경(境)]의 이야기다. 자유시와 시조의 상이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자유시에 있어서 [의(意)]가 시조에 있어서는 [지(志)]요, 자유시에 있어서 [논(論)]이, 시조에 있어서는 [관(觀)]이라는 이야기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자유시에 있어서, [유(流)]는 시조에 있어서는 [풍(風)]이라고나 할까. 이 좁은 지면의 논고에서 일일이 작품까지를 들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점에 있어서 자유시가 시조에서 배워갈 것이 있을 지언정 시조가 오늘의 자유시 쪽을 아무것 하나 의식할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탄주할 때나 시조창(時調唱)을 할 때도 그 [경(境)]이라는 것이 있다. 가사 <동산일출(東山日出)>이라든지, <평사낙애(平沙落雁)>이라든지, <주마축지(走馬蹴地)>라든지, <경조탁사(驚鳥 蛇)>라든지 우리 시조의 종장에도 이런 [경(境)]이라는 것이 있고 또 한 수 한 수에는 수마다 시정신의 뿌리가 그 경(境)이라는 것에 가 닿아야 하는 것이다.
즉 희(喜)이거나, 비(悲)거나, 애(哀)거나, 낙(樂)이거나, 환(歡), 적(寂), 고(孤), 멸(滅), 근(近), 원(遠), 직(直), 우(迂), 묘(妙), 현(玄), 등 무어 동양정신의 뿌리가 어느 경(境)에 가 닿긴 닿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아무튼 시조란 자수만 맞으면 되는 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둔다.



[ 포시법(捕詩法) ]


짐승이나 어별(魚鼈)을 잡는데도 그 포획법이 따로 있다. 가사 호랑이나 곰이나 멧돼지를 잡는데는 이놈이 잘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앉았다가 무심코 어슬렁이며 나타난 놈에게 일발필중(一發必中)의 포화를 쏘아 적중시켜야 된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맞히게 되면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이 해를 입게 된다.

쩡 터질 듯 팽창한
대낮 고비의 정적(靜寂)

읽던 책도 덮고
무거운 눈을 드니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선가 낮닭소리.
-오(午)

이호우 선생의 작품이다. "석류꽃 뚝 떨어지며 어데선가 낮닭소리" 이 종장이야말로 일발필중으로 적중한 종장이다. 이 시에는 이 종장말고는 다시 다른 말이 있을 수가 없다. 종장뿐 아니라 시제 자체도 <오(午)>라는 단자를 놓아 이미 적중하고 있다. 단발로 큰 짐승(詩材)을 쓰러뜨린 통렬감이 뒤따르는 작품이다. 포수로 친다면 과연 명포수의 솜씨이다.
바늘못 하나로 나비나 잠자리의 등을 찔러 꼼짝없이 표본실의 함 속에 꽂아 놓듯이, 시인에겐 은바늘(的中語) 한 개만 가지고도 숨통을 찔러 지구의 자전까지를 멎게 하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종장에는 주마축지(走馬蹴地), 달리는 말이 뒷굽으로 땅을 차듯 하는 경개(景槪)도 있는 것이다.

궂은 일들은 다 물알로 흘러지이다
강가에서 빌어본 사람이면 이 좋은 봄날
휘드린 수양버들을 그냥 보아 버릴까.

아직도 손끝에는 때가 남아 부끄러운
봄날이 아픈, 내 마음 복판을 뻗어
떨리는 가장가지를 볕살 속에 내 놓아.

이길 수가 없다 이길 수가 없다
오로지 졸음에는 이길 수가 없다
종일을 수양이 뇌어 강은 좋이 빛나네.
-수양 散調

고려청자·이조백자만 국보가 아니라, 이런 시품이야말로 국보급이다. 박재삼 시인은 총포로 사나운 짐승을 잡는 포수가 아니라 여울목에 그물이나 통살을 쳐 놓고 제발로 걸어 들어오는(?) 고기를 건져올리는 어부 같은 시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두어야할 일은 그물이나 통살을 아무 물에나 친다고 고기가 들어와 주는 것이 아니다. 물고기의 통로를 알아서 그물이나 통살을 쳐야 고기가 걸려드는 것이다. 이 시인은 물고기가 흐르는 목, 다시 말해서 인정의 흐름, 천지의 기미(幾微), 무엇 그런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차리는, 말하자면 모든 사물과 통화를 가장 잘하는 달인(達人)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별로 힘을 안들이고도(?) 고기를 잘 잡아내는 달통한 어부라고나 할까. 그러기에 그의 시에는 억지를 부린 흔적이라고는 없다. 자수를 맞추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이 눈곱만큼도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그의 가락(내재율)에 자주가 절로 따라온다.

그대 그리움이
고요히 젖는 이 밤

한결 외로움도
보배양 오붓하고

실실이 푸는 그 사연
장지 밖에 듣는다.
-비

이영도 선생의 살뜰한 작품이다. 그리운 사람을 못내 그리워하는 곡진한 심정이 잘 담겨져 있다 언단의장(言短意長), 이 짧디짧은 단수 하나로 하여 우리들은 몸도 마음도 온통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간곡히 타이르는 듯한 이 정의(情誼)로운 저음은, 마치 봄날 어린 소녀가 신발을 벗어들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뒤쫓아가 나비 날개를 잡아내듯 하는 포시법(捕詩法)을 쓰고 있다 묘품(妙品)이다. 심안(心眼)을 열고 입실하여 보라. 천지간에 시는 얼마든지 편재해 있는 것이다.



[ 생활시조의 갈길 ]


자수만 맞는다고 다 시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했는데, 그러면 시조가 되고 안되는 사이는 무엇인가?

피 살아 도는 정기 신열의 불꽃 바쳐
어김없는 시간의 맥이 뛰는 너울로
일어라 잠깨는 동녘 예지의 햇살처럼.
-깃발

내가 맡아보는 어느 월간지에 투고해 온 독자의 작품이다. 종장의 끝 머리가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자수는 거의 맞아 있다. 그런데 시조가 왜 안 돼 있는가? 첫째로 이 시는 시조로서의 내재율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글자 수를 토막내어 시조라는 틀에 구겨박고 있다.
구슬을 실에 꿰어 사름사름 사려담은 것이 아니라, 생나무 가지를 구겨박듯 하는 무리를 범하고 있다.

바다가 무어냐고 아이들이 하도 묻기에
군산가는 길에 먼 수평을 가리키며
돛배와 갈매기와 아! 그 다음 아무 말도 못했다.

<바다>라는 어느 독자의 시다. 앞의 작품에 비해 이 시는 얼마나 여유로운가. 앞의 작품이 배배 꾀어있는데 비해 뒤의 작품은 얼마나 넉넉하게 사려 담겨져 있는가.
앞의 작품은 시조라는 틀에 갇혀 숨도 제대로 못쉬고 있는데 비해 뒤의 작품은 시조라는 우주 속에서 자적(自適)하게 소요하고 있다. 누가 시조는 틀이 좁아 답답하다 했는가?

구두를 새로 지어 딸에게 신겨주고
저만치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어느 날

김상옥 선생의 시다. 시제(詩題)도 그저 <어느 날>이다. 다 자란 딸자식에게 구두 한 켤레를 지어 신겨놓고 저만치 걸어 가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감회에 잠기는 어버이의 심정을 아무 구김살없이 노래한 작품이다.
자식의 자라나는 그늘에 묻혀 절로 늙어가는 어버이의 생애, 자식은 어쩌면 나를 비쳐보는 거울이 된다. 이때 이 시인의 가슴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텅 빈 항아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한 생애 사무치던 일도 저리 쉽게 가것네" 이 종장 뒤에 깔린 말(여운)은 그 얼마인가? 언외언(言外言), 그래서 시란 언단의장(言短意長)이다. 구정물에 호박씨가 모두 떠오르듯 그렇게 말들이 의표(意表)에 다 떠올라야 하는가, 수다를 떨어야 하는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가는 듯 둘렸다.
-단란(團欒)

이영도 선생의 작품이다. 이 시인의 특기(詩法)인, 한 점 군살을 붙이기를 용납않는 깔끔하게 깎아 놓은 밤 같은 작품이다.
얼마나 진솔한 작품인가. 시가 왜 꼭 난해해야 하는가. 왜 꼭 많은 어휘가 동원되고 윽박질러야 하는가. 시조는 민족시요, 국민 시가다. 봄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읽는 이의 가슴에 타이르듯 젖어들게만 하면 된다. 말은 짧게 하고 뜻은 길게 하면 되는 것이다.

사흘 와 계시다가 말 없이 돌아가시는
아버님 모시두루막 빛 바랜 흰 자락이
웬일로 제 가슴 속에 눈물로만 스밉니까.

어스름 짙어오는 아버님 여일(餘日) 위에
꽃으로 비춰드릴 제 마음 없사오매
생각은 무지개 되어 고향길을 덮습니다.

손 내밀면 잡혀질듯한 어릴제 시절이온데
할아버님 닮아가는 아버님의 모습 뒤에
저 또한 그 날 그 때의 아버님을 닮습니다.
-父子像

졸시다. 제 시를 제가 무어라 이야기 하기란 쑥스럽다. 다만 이 시도 생활시에 드는 것이라 여기에 실어 독자 여러분에게 참고로 적어본다.
이상 몇 편의 작품을 보더라도 우리 생활주변에 얼마나 많은 시조의 소재들이 산재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아직은 시조 인구의 연령층이 얕아(20-30대), 작품에서도 몸부림이 보이지만 장차의 날엔 온 계층의 국민들이 참여하여 백화가 만발한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고시조의 풍도(風度)와 멋 ]


한 시인이 어느 노시인에게 물어 보았다. "옛날에는 이론이나 평론이니 하는 것이 없었어도 곧잘 불후의 명작들이 나왔는데 요즘은 그 요란스런 평론이니 무슨 주의이니 하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그렇지 못한 까닭이 무엇입니까"하고.
그랬더니 노시인 왈 "옛날 시객이나 문객들은 붓만 들면 붓 끝에 그 [신명]이라는 게 따라왔지만 지금 시인들은 그 [신명]이라는 것에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란다. 옳은 말씀이다. 시의 기능공은 많아도 시의 장인(匠人)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하여 잠 못이뤄 하노라.

고려 충혜왕 때 병조판서 이조연(李兆年)의 시다. 지금으로부터 6, 7백년을 격한 그 시절에도 벌써 사람의 정한(情恨)은 배꽃 핀 삼경, 이지춘심(一枝春心)에 달빛을 앉힐 줄 알았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월백]이니, [은한]이니, [일지춘심]이니를 쓰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 속에 숨어있는 시정신의 멋, 정과 한이 한 자락 강물만한 것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거든 꽃에서나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청구영언>에 실려 있는 실명(失名)씨의 작품이다. 아니 애시당초 이름 3자도 남기기가 싫었던 무명씨의 작품이다. 이 허무, 이 낙막(落寞), 페이소스라면 이만한 페이소스가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 고 고시조들에서 그 외형적인 것을 따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여유, 그 풍도의 정신을 배우자는 것이다
시에서건 생활에서건 모두가 왜소일로(矮小一路)를 치달아 소위 그 장자지풍(長者之風)이라는, 동양 선비의 [悠長]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 날이 올까봐 두렵다. 동양화가의 멋이 여백에 있고, 거문고나 가야금의 율조가 단속(斷續)에 있듯이, 우리 시조의 참 멋이란 장(章)과 장(章) 사이의 여운에 있는 것인데 요즘 유행하는 그 디스코 춤을 추듯 말로만 빽빽히 메워버린다면 하늘도 감아 넘기던 승무의 소매자락 같은 것은 어디가서 찾아볼 것인가 말이다.

사람이 몇 생(生)이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金剛)의 물이 되나! 금강의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안개
풀 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八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조운의 <구룡폭포(九龍瀑布)>라는 사설시조이다. 진실로 금강에 서서 구룡폭포의 실경을 본다한들 어떻게 이렇게 장관이기야 하겠는가.

백문이불여일견(白聞而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시에 있어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이 환희, 이 비애, 이 목숨의 통한을 보라. 어느 화인(畵人)이 있어 이 설움을 그리겠는가? 어느 악인(樂人)이 있어 이 지애를 탄주하겠는가? 이 거장이 간후 시조를 한다는 시인이 이제 2백으로 헤아린다. 사설시조를 쓴다는 시인도 적지 아니 있긴 있다. 그러나 그러나다. 복판을 울려야 변죽이 울지 변죽만을 더듬어서야 복판이 울겠는가? 아무 말이나 구겨박는다고 사설시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름은 월출봉에
끊이락 또 이으락

그저 한양으로
나올제 바라봐도

조수(潮水)는 오르락 내리락
영산강구(榮山江口)로구나.

역시 <나올제 바라봐도>라는 조운의 작품이다. [조수만 오르락 내리락 영산강구로나] 한 짐 져다 부려놓은 듯 이에 더 후련하겠는가.

어떻게 살면 어떻며, 어떻게 죽으면 어떠랴
나고 살고 죽음이 또한 무엇인들 무엇하랴
대하(大河)는 소리를 거두고 흐를대로 흐르네.

이호우의 <하(河)>라는 단수다. 예까지는 왔다. 장차 누가 있어 이 풍도, 장류를 이어 나갈 것인가?



[ 동시조와 민족 정서 ]


언제인가 서울 도심의 중·고등학생들이 그려낸 잠자리 날개가 앞 뒤 두 줄로 4개나 달려 있고, 닭다리도 역시 앞 뒤 두 개씩 4개가 나 있는 것을 신문 보도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냥 웃어넘길 수만 없는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 교습이나 시킨다고 고갈되어가는 민족정서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국적있는 교육을 아무리 입으로만 떠들어봐도 민족 정서가 고갈된 곳에서는 참된 한국인상은 정립되지 않는다. 필자는 하나에도, 둘에도 민족 정서의 함양에는 초등학교 학생 때부터 동시조 교육을 시켜야 하리라고 본다.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꽃가지를 흔들 듯이

어린 시절을 시골 산마을에서 자란 필자는 엄마가 윗 냇물에 앉아 배꽃 같은 흰 빨래를 헹궈야 비로소 도랑물이 환히 열리고 봄이 오는 줄만 알았었다.
생각해보라. 엄마가 빨래로 헹구지 않은 도랑물이 어찌해 열릴 것인가. 겨우내 꽁꽁 얼어 붙었던 도랑물은 어머니가 사랑의 손길로 풀어냈던 것이었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 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분이네 살구나무

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고 묻는다면 그 누구나 밥을 먹고 산다고 대답할 수밖엔 없다.
물론 사람도 몸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먹이를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밥보다 더한 것,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인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은 쌀독 속의 쌀이 떨어져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의 꿈(소망)이 떨어져서 죽는다고 했다.
동네서 제일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에 하늘은 제일 큰 살구나무의 선물을 심어 주었다. 밤 사이 내린 가는(細)비에 젖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살구나무의 분홍빛 꽃대궐, 사람이 지은 어느 대궐이 이에서 더 높고 더 현란하겠는가. 벌·나비의 신들린 마지굿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분이는 이 조그만 대궐에서 태어나 온누리보다 더 큰 꿈을, 한 봄뿐 아니라 일생동안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밥은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다음 끼니 때가 되면 배고파 오지만, 어린 시절 먹은 흐뭇한 민족정서는 일생을 두고 두고 생각할수록 배불러 오는 것이다.

달아논 태극기 보고 아침해가 인사하고
마을길 마을길들이 서로 만나 인사하고
산새알 물새알 같은 아이들이 모입니다.

잔솔밭 비둘기처럼 종소리가 날아가고
여울물 고기떼처럼 풍금소리 흘러가고
푸른 산 메아리 같은 아이들이 뛰놉니다.
-산골학교

산새알 물새알 같은 아이들도 없고, 푸른 산 메아리 같은 뛰어노는 아이들도 없는 서울의 콩나물 교실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한국의 고향의식인 민족 정서를 이식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어머니들, 우리 아버지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시조짓기운동에 동참하는 날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동시조를 쓰는 아동문학 부문의 시인이 아직은 별반 없고, 또 필자의 수중에 그 자료가 없어, 졸시로만 예문을 든 것이 미안하다.



[ 명시조 감상 ]


찌르릉 벌목소리 끊어진 지 오래인데
굽은 가지 끝에 바람이 앉아 운다
구름장 벌어진 사이로 달이 반만 보이고

낮으로 뿌린 눈이 삼고 골로 내려덮어
고목도 형형(炯炯)하여 뼈로 아림일러니
풍지에 바람이 새여 옷깃 자로 여민다.

뒷산 모롱이로 바람이 비도는다
흰 눈이 내려덮여 밤도 여기 못 오거니
바람은 무엇을 찾아 저리 부르짖는냐.
-한야보(寒夜譜)

하보(何步) 장응두(張應斗)선생의 회심의 역작이다. 하보는 우리 시조단의 거장이었는데 불운한 생애를 살고 간 때문인지 업적만큼 문명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이 <한야보> 한 수만 가지고라도 그는 재평가 받아야할 시인이다. 필자가 졸고에서 전술한 바 있거니와 만약 판소리로 친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송만갑(宋萬甲)의 그 벌목형형(伐木炯炯)한 우람한 목소리를 듣는 듯한 장중한 목소리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살구나무 허리를 타고 살구나무 혼령이 나와
채선(彩扇)을 펼쳐들고 신명나는 굿을 한다
자줏빛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잡는 연분홍!

봄을 누룩 딛고 술을 빚는 손이 있다
헝클린 가지마다 게워넘친 저 화사한 발효
천지를 뒤덮는 큰 잔치가 하마 가까워 오나부다.
-축제

김상옥 선생의 작품이다. 화사한 봄날 가지가 휘어지게 만발한 살구꽃을 보며 정말 미치게 신명이 잡힌 작품이다. [자줏빛 진분홍을 돌아 또 휘어잡는 연분홍] 그야말로 미치게 신명나게 짚고 넘어가는 굿거리 장단을 보는 느낌이다. 가야금 산조에다 비긴다면 진양조도 아니요, 중몰이도 아니요, 잦은 몰이도 아니요 휘몰이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한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萬)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내 사랑은

박재삼 선생의 작품이다. 누에가 명주실을 뽑듯 나긋나긋 뽑아낸 시상(詩想), 가늘고 흐느끼는 듯하다. 또한 질기기가 명주실오라기 같다. 천의무봉이란 이런 솜씨를 두고 이른 말일까. 송만갑의 창법이 우렁우렁하고 큰 도끼로 고목을 찍는 듯하여 벌목형형이라 했다면, 이동백(李東伯)의 창법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며, 마치 귀신이 흐느끼는 듯하여 귀곡성(鬼哭聲)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두둥실 창파에 뜨니 하자할 것 없는 목숨
조국도 유품만 같고, 인생은 꿈이다마는
지울 수 없는 사랑아 먼 돛배야 갈매기야
-창파에 떠서

격정 6백리 달래도 설레는 섬아
남해 쪽빛 다 마시고 초록도 울먹이는데
제 마음 이기지 못해 나도 너를 찾아왔네.
-섬

서귀포 귤밭에서 술래 잡던 밝은 바람
모슬포 돌아온 길엔 장다리꽃 흩어 놓고
님 오실 바다를 향해 시시덕여 갑니다.

절도엔 어둠도 감청 향수도 물이 든다
한 가락 젓대를 불어 일만파도 다 눕히면
한라도 구름을 열고 달을 띄워 이더라.
-한라의 달

졸시 <제주 기행시초>(10수) 중에서 4수만을 골라 싣는다. 시조가 꼭 무슨 의식의 심층이란 늪(?)에만 빠져 허우적거려야 된다는 법은 없다. 조금은 [가(歌)]이어도 좋다는 이야기다. 30년 전의 작품인데 기행시가 가지는 시조의 멋, 뭐 그런 것을 생각하며 써 본 작품이다. 감상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