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없음9
내용없음10

회원등록 비번분실
CustomerCent
 menu05
시조교실
menu05 보드가 정상적으로 생성되었습니다.
이 부분의 출력내용은 [보드설정]-[2-30] 에서 지정합니다.
ㆍ조회: 633  
: 나의 시조 이렇게 썼다/시조도 시이어야 한다/염창권
나의 시조 이렇게 썼다/시조도 시이어야 한다/염창권 [ 시조 교실 ]
[나의 시조 이렇게 썼다 / 염창권]


**시조도 시이어야 한다** http://gulsarang.pe.kr/default/img/editor/at_editor.gif

1.
필자는 시조도 시(poem)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정 갈래의 특성을 포괄하는 명칭으로 '시(poem)'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이 '시'가 발화되는 독특한 양상에 따라 자유시와 정형시를 구분하고, 이를 다시 우리의 문학 현실에 대입하면 시(자유시), 시조(정형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뜻이 큰말로 사용하면, 서정 갈래의 특성을 충족시키는 작품들이 모두 대상이 되 는 것이다.
시조를 쓰는 사람들은 시조가 시(poem)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아 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문학 현실은, 암암리에 시와 시조를 구별해서 보는 시각들이 많다. 시 전문지와 시조 전문지가 따로 발간되는 사정이 그러하며, 몇몇 종합문예지를 제외하고는 아예 시조를 편집에서 제외시키는 경우도 그러하다. 또한, 시조를 창작하는 시조시인들의 작법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시이든 시조이든 먼저 시가 갖는 미학적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 출발점은 동일하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한다면, 시조의 존재 요건을 두 가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에 서 말한 바, 우선은 시적인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다음으로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 의 정형시'로서 형식적 제약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 양자를 어떻게 동시 에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창작의 관건이 된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시조가 시적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시적인 발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동일 교수는 서정 갈래의 특성이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세계의 자아화'에 있다고 정의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지향하는 지점에서 시적 발상이 출발한다고 보겠다. 이는 사물을 완상하거나 경관을 영탄하는 수준에서는 성취할 수 없다. 세계가 자아의 내부에 깃들게 됨으로써 동일성을 성취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시적 초월을 감지 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시조가 정형시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형식적 제약을 감 수해야 한다. 시조의 정형성은 한시의 경우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다는 데 특징이 있 다. 그 자유와 제약의 견딤 속에서 시조는 탄생한다. 그러므로, 기계적으로 글자 수만 맞 추는 시조 작법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가령 시조를 항아리라고 한다면, 독자인 나에게 가장 재미없는 항아리는 내용과 형식이 이분법적으로 주형된 항아리일 것이다. 이 경우의 시인들은, 표정이 똑같은 항아리에 무 엇을 담을 것인가 고민한다. 그러다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항아리의 입에 무엇이든 마 구 집어넣는다. 독자로서 말하거니와, 이런 항아리에선 질료의 향기가 스며나오지 않는 다.(졸고, "이중의 소외구조 혹은 '시조'라는 항아리", 열린시조, '97 가을호)

2.
아래 시조는 필자의 등단작품(90년 동아일보)이다. 이 시조는 80년대 말에 씌어졌다. 20 대에 광주의 5월을 경험한 필자는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되었다. 처음에는 군사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시를 습작했다. 그러다가 그 적개심이 결국은, 도망쳐 나온 자의 비겁함을 위장하는 심리 기제에서 비롯됨을 깨닫고 매우 부끄러워졌다. 습작했던 많은 시들이 의식의 과잉 상태에서 쓸데없이 길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 필자가 생각한 것이 시조에 대한 형식 탐구와 시조 습작이었다. 내 자신에 대한 진솔함, 그비겁함과 부끄러움에 대한 응시 그러한 것들을 시조로 쓰고자 했다. 그러므로, 아래 시조는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나약한 인간의 자기 반성적 고백으로 읽혀져야 마땅할 것이다.

강가에서 2

철 지난 가슴으로 강가에 나앉으면
갈대숲은 새 떼를 희게 날려보내고
우리의 아픔은 끝내 물비늘로 저민다.

들판에 홀로 서서 낮은 하늘 바라보다
손사래 여는 눈빛 떠나가던 무딘 팔뚝
보인다, 강울음으로 일어서는 몸짓이…….

밤의 끝엔 길눈 덮는 눈발이 몇 자나 될까
흰옷의 말씀으로 세상이 문득 밝는
기러기 무리져 내려
뉘여보는 바람숲을

굽 도는 마음마다 깊디깊은 흐름으로
이제는 돌아가서 돌아설듯 멈추리라
동백꽃 붉은 가슴에 등불 켜는 그 목소리.

위의 시조가 조금이나마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분노나 적개심을 내면 깊숙이 가라앉히는 힘에 있었을 것이다. 밖으로 튀는 의욕과 감정의 과잉, 그것을 내적으로 응축시키는 힘은 시조의 형식적 제약을 견디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으로 필자는, 고도로 응축된 시 정신, 아포리즘, 삶의 비의를 내포하는 객관적 상관물 따위와 마주칠 때만 시조를 쓰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시적 순간을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제 20세기도 거의 저물어가고 있다. 새로운 천 년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과연 시조가 가지는 장르적 의미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필자는 90년대의 시작과 함께시조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문단에 얼굴을 디밀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시조가 가지고있는 생명력과 고유성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본시 천성이 어느 하나에 진득하게 몰두하지 못하는 터라, 동시·시·평론 등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시조를 쓰다보면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 형식에 관한 문제이다. 여러 장르의 형식을 탐구하다 보면 시조의 형식에도 어느 정도 눈이 뜨여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시조의 형식에 대한 회의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700여 년 전쯤에나 씌어졌을 우탁의 [嘆老歌], 고려말에 발견한 그 시조 양식이우리의 원형적 사유 방식이 되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嘆老歌]를 당대에 유행하던 악곡과 비교해 본다면, 내용과 형식면에서 대단히 실험적인 작품이라 할 것이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시조가 현대인에게까지 계승될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시정신을 담기 위한 끊임없는 형식탐구가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오늘 여기에서 시조를 쓰는 사람은 형식과 내용을 따로 놓지 말고, 과연왜 시조이어야만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창작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겠다. <염창권>

#################################################################

* 이 글은 현대시조 이해를 돕기 위해 '시조대학' 창작강의에서 발췌함